[78호] 특집 :: 대학 위의 대학, 대학 밑의 대학

과월호 다시보기/78호 2014.10.20 00:57

대학 위의 대학, 대학 밑의 대학

- 무너져가는 학벌사회 속에서 치열해지는 대학 간의 서열 다툼


   다음 종간호에 연세통의 학벌주의 후속기사가 마지막으로 실립니다. 애초에 기획했던 4번의 연재를 3번으로 줄이는 대신, 종간호에는 특집기사가 좀더 비중있게 실릴 예정입니다. 학우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연경제 vs 고경제ㅋ/최근 3년 기재부 사무관 임용(연대가 고대 트리플로 바름)”

“연대는 SKY 카르텔 영원히 붙잡고 싶겠지”

“x열세 xx충 개xx 새x들 수준 좀 봐라 ㅋㅋㅋㅋㅋ”

- 다음 카페 <훌리건 천국> 내 ‘대학서열게시판’ 게시물 제목 일부 발췌


   매년 입시철만 되면, ‘디시인사이드 4년제 대학 갤러리’는 자신의 대학을 높이고, 다른 대학을 깔아뭉개는 소위 ‘훌리건’들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축구에서 상대팀에 대해 난동을 피우는 본래의 훌리건처럼, 이들도 다른 대학들에 대한 욕설이나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지난 2013년 12월, 한양대학교 학교법인 측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중앙대학교 학생을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법원은 혐의를 인정하고 해당 학생에게 300 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 대학별, 학과별 합격 예상 표준점수가 빼곡하게 적힌 배치표는 수험생들에게는 친숙한 존재이다. (출처: 유웨이중앙)



남을 깎아내려야 내가 산다


   대학입시를 위해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재수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배치표’라는 이름의 거대한 종이를 보았을 것이다. 배치표에는 합격 가능한 예상 점수가 대학과 학과별로 내림차순으로 정렬되어 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표현은 배치표에 나열된 대학 순서에서 탄생했다. 배치표가 처음 만들어진 1980년대부터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연고 서성한’으로 대표되는 대학서열은 언론과 입시학원의 지원을 받으며 한국 사회에 공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서두에 언급한 ‘훌리건’들은 이러한 서열을 부정하며, 어떻게든 타인에게 자기 대학이 우위에 놓인 ‘새로운 대학서열’을 주지시키려 노력한다.


   훌리건들이 과격한 발언까지 일삼으면서 다른 대학을 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점점 무너져가는 ‘학벌만능주의’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7,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이란 지식의 상아탑이자 엘리트의 상징이었다. 들어가기도 어렵고 학비도 비쌌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이란 가문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지닌 단어였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70.7%가 대학을 진학하는1) 상황에서 ‘명문 대학’은 더는 성공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SKY’에서는 한 해에도 수만 명씩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고, 이들은 동일한 취업 시장에서 한정된 숫자의 일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역설적이게도 학벌만능신화가 점점 무너져가는 이 지점에서, 대학생들 사이의 ‘학벌’이라는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학벌’이라는 요소가 취업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에서 필요조건으로 바뀌면서, 학벌 자체가 스펙의 일부분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불확실한 취업시장에 서 승리하기 위해, 혹은 그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점점 더 필요 이상으로 높은 스펙을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최근의 학벌주의를 낳은 셈이다. 이것이 더욱 심화되면 과격한 훌리건이 되고, 나아가 대학 간의 갈등요소가 되고 만다.



‘상업적인’ 서열, 대학평가


   그렇다면 ‘학벌주의’는 모두 학생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학벌주의와, 그 사생아인 ‘훌리건’은 학생과 사회 모두의 잘못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사회가 저지른 잘못의 중심에는 ‘대학평가’가 존재한다.



▲ 지난 26일, 서울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대학생들의 대학평가 거부 시위가 있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난 9월 22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페이스북을 통해 ‘뜻밖의 선언’을 했다. 바로 언론사의 대학순위 평가와 그 결과를 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나서 대학순위 평가를 거부한 최초의 사례다. 1994년 중앙일보에서 처음 시행한 이래, 대학평가는 언론사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매년 언론사들은 연구실적, 교육여건, 국제화 지수, 취업률 등 다양한 지표들을 혼합하여 대학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일렬로 줄 세운다. 각 언론사별로 평가 기준은 상이하지만, 국제화 지수나 졸업생 사회참여도 등의 지표들은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학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건에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학평가의 목적은 대학의 공정한 평가가 아닌 광고 수주에 있다는 비판의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2011년 <시사in>에서조사한 결과,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상위 10위 안에 든 대학의 절반이 중앙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횟수 상위 10위 안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광고 게재 횟수가 대학평가에서의 높은 점수를 보장한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대학평가’라는 것이 실제로는 언론사들의 광고 장삿속에 불과하다는 의심은 떨치기 어렵다.


   문제는, 대학 당국이 언론사들의 대학평가가 장삿속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어떻게든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각 대학 당국들이 핵심 평가 항목인 ‘국제화 지수’를 위해 국제화 정책에 많은 투자하는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학과별 영어강의의 비율도 강제하고 있다. 영어강의 비율이나 외국인 유학생 및 교환학생 수가 해당 대학의 국제화 지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대학평가를 거부하지는 못할망정, 이에 동조하고 있는 대학들의 태도는 충분히 비판의 소지가 있다.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


   앞서 살펴본 바로는 ‘명문대학=좋은 대학’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대학이란 무엇일까? 어떤 요소가 ‘좋은 대학’인지를 결정하는지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안승재(경영학·09) 씨는 “좋은 대학은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실력 있는 교수진과 엄선된 학생들, 그리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춘 학교”라고 대답했다. 일견 대학평가의 기준과 비슷해 보이는 관점이다. 반면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권수지(생물학·11) 씨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제약을 걸지 않는 학교가 좋은 대학”이라며, “편리한 수강신청이나 복지 장학금의 보장, 교실이나 도서관 열람실의 수가 충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평가에 제시된 추상적인 요소들보다는 실질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편의를 충분하게 제공하는 학교야말로 좋은 대학이라는 의견이다. 독특한 의견도 존재했다. 홍익대학교에 재학 중인 권호중 (법학·09) 씨는 “좋은 대학은 내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학교”라고 대답했다. 그는 “학교의 명성이나 순위가 아니라 철저하게 나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자랑스러우면 된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좋은 대학’이란 결코 몇 가지 평가 요소를 통해 획일화될 수 없으며, 한 언론사나 개인을 통해 배타적으로 규정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줄 세우기’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현재진행형인 현상이다. 영국에서는 대학평가기관 QS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중국의 상하이 자오퉁 대학에서는 매년 학술랭킹(ARWU, Academic Ranking of WorldUniversities)을 발표하고 있다. 대학 평준화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프랑스마저 대학 위에 엘리트 교육기관 ‘그랑제꼴(Grandes ecoles)’이 존재하여 그들만의 순위를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선언은 더욱 빛을 발한다. 분명,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선언이 뿌리 깊은 ‘대학 서열화’의 고리를끊을 수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어쩌면 ‘엘리트주의의 발로’라는 비난을 듣고 끝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대학 서열화에 대한 저항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이번 선언은 더없이 값지다.



1) 진학률(%) = 해당연도 고교 졸업자 중 진학자 / 해당연도 고교 졸업자 * 100, 2014년도 통계청 자료


강다솔 기자

2kd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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