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호] ‘감히’ 한국 힙합을 논하다

과월호 다시보기/78호 2014.10.20 01:10

‘감히’ 한국 힙합을 논하다

- 사회학적으로 한국 힙합 바라보기


   최근 <Show me the money 3>가 인기리에 종영됐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아이돌 가수인 B.I와 Bobby가 참가해 이목을 끌었으며 Bobby는 언더그라운드1)의 랩퍼들을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런 힙합(Hip-hop) 프로그램 뿐 아니라 음원 차트에서도 힙합음악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힙합은 현재 우리들의 삶에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와있다.



▲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힙합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3>(출처:M net)



힙합의 시작


   힙합은 1970년 미국 뉴욕(New York)의 브롱크스(Bronx)에서 시작되었다. 브롱크스는 1950년대 까지 흑인 노동자와 중산층이 함께 거주하던 도시였다. 하지만 1959년에서 64년 사이 건설된 CBE(Cross Bronx Express)로 인해 중산층이 교외로 빠져 나가면서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빈민층만 남게 되었고, 이들에 의해 저항음악의 성격을 띤 힙합이 탄생하였다.


   힙합은 동부, 서부, 남부힙합와 같이 지역적 특징을 지닌다. 동부힙합(East Coast hip hop)은 뉴욕을 기원으로 두고 있으며 대도시와 그 이면에 있는 할램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공격적인 비트와 마이너 코드를 특징으로 갖고 있으며 폭력적이고 비판적인 가사가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노토리어스 비아지(The Notorious B. I. G)가 있다. 이와 대비를 이루는 서부힙합(West Coast hip hop)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와 같은 도시의 따듯함과 여유로움을 반영한다. 활동적인 멜로디와 빠른 비트를 사용해 밝은 느낌을 주며 투팍(2Pac)이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뽑힌다. 마지막으로 남부힙합(Southern Hip Hop)은 더리 사우스 (Dirty South)라고도 불리며 마이애미등 남부도시를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남성적인 가사와 반복되는 강한 리듬으로 인한 중독성이 특징이며 릴웨인(Lil Wayne)등이 대표적 아티스트다.


   이렇듯 힙합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흑인들의 저항성과 지역의 특수성을 고스란히 담은 음악이다. 특히 힙합은 1990년대 한국으로 도입되면서 한국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힙합의 태동


   한국 최초 랩은 1989년에 발표된 홍서범의 ‘김삿갓’에서 등장했지만, 한국 힙합의 기원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로 꼽힌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와 자메이카 랩스타일이 들어간 ‘하여가’, 그리고 갱스터 랩 스타일의 ‘ 컴백 홈’을 발표하며 한국힙합의 서막을 알렸다. 듀스의 3집 Force Deux(1995)은 한국힙합의 명반으로 불린다.


   한국에서 힙합의 출발이 가능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영향이 크다. 당시 신자유주의는 시장개방을 주창해 세계무역기구(WTO)를 필두로 금융의 세계화를 촉진시켰다. 이 결과로 경제, 즉 하부구조에서의 통합이 선행되자 상부구조인 문화에서도 경계의 붕괴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다른 문화와의 장벽이 무너졌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힙합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힙합이 도입된 때의 한국사회도 힙합이 인기를 끄는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사회는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군부정치가 마무리되고 문민정부가 등장했다. 군부독재시절동안 응축되어 있던 시민들의 한(恨)과 에너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이것이 흑인들의 억압된 삶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는 힙합의 성격과 만나게 되어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고 힙합이 한국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특수한 구조의 탄생


   이후 한국힙합은 오버그라운드2)(이하 오버)와 언더그라운드(이하 언더)로 나뉘게 된다. 오버의 초창기 가수로는 지누션이 있다. 지누션은 1997년 엄정화가 피쳐링한 ‘말해줘’를 기점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업타운 역시 대표적인 오버의 아티스트다. 힙합적인 요소를 추구한 업타운은 1997년 ‘다시 만나줘’가 큰 인기를 끌며 대표적인 힙합그룹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와 반대로 언더는 PC통신 소모임에서 시작되었다. PC통신 하이텔 소모임 ‘소울 트레인’에서 발전하여 1997년 힙합 동호회 ‘블렉스’가 탄생하였다. 이 ‘블렉스’의 출신이 바로 가리온과 주석이다. 비슷하게 나우누리의 ‘돕 사운드’에서 출발하여 1999년에 만들어진 동호회 ‘쇼 앤 프루브(SNP)’에선 버벌진트, 데프콘등이 활동하였다.


   이렇게 오버와 언더는 흡사 변증법의 정과 반의 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오버의 힙합음악이 갖고 있던 모순으로 인해 촉발된 것이다. 힙합은 그 태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회 비판적이고 주류문화에 대항적인 모습을 띄어야 하는데, 오버의 힙합은 반대로 대중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주류에 편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버의 힙합은 스스로 모순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비판하는 ‘반’, 즉 언더의 힙합이 형성된 것이다.



한국 힙합의 ‘합’


   이렇게 정과 반의 구조를 갖고 있던 한국 힙합에 ‘합’이 발생하게 되는데, 변증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상호작용, 즉 언더와 오버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 상호작용의 시발점은 1999년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의 유행이었다. 특히 ‘1999 대한민국’부터 ‘2002 대한민국’까지 이어진 총 7개의 대한민국 시리즈는 업타운, 김진표, 조PD, 김성수, 드렁큰타이거등 언더와 오버의 랩퍼들이 참여했다.


   이 ‘합’을 완성시킨 대표주자는 언더와 오버 모두를 아우르는 다이나믹듀오와 에픽하이다. 다이나믹듀오는 커빈이 같이 활동했던 CB Mass시절 언더를 주 무대로 활동하였으며 커빈의 탈퇴 후 다이나믹듀오란 이름으로 오버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링 마이 벨(Ring my bell)’, ‘고백’, ‘뱀(BAAAM)’등의 노래로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가수가 된다. 에픽하이 역시 초창기 언더에서 시작하여 ‘Fly’로 대중의 주목을 끈 뒤 멤버들의 활발한 방송활동과 더불어 ‘Fan’과 ‘One’, ‘우산’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합의 결과는 현재 힙합을 기반으로 한 K-pop의 인기이다. 대표적으로 빅뱅의 곡들은 힙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많은 곡들이 랩과 힙합의 비트를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더의 힙합 음악도 대중들 사이로 퍼져 나가고 있다. 빈지노의 ‘아쿠아 맨’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누구나 한번쯤은 저스트뮤직(Just Music), 일리어네어 레코즈(Illionaire Records)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한국 힙합은 정반합의 과도기를 지나 이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힙합 역시 언젠간 ‘정’이 될 것이고 이에 따른 ‘반’이 형성되어 결국 새로운 모습의 한국 힙합이 탄생할 것이다. 한국 힙합의 발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또 어떤 음악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할지 기대가 된다.



▲ 에픽하이에게 대중적 성공을 안겨준 3집 앨범 (출처: 네이버 뮤직)



1) 사전상 의미는 지하운동. 줄여서 ‘언더’라고도 한다. 대중문화에 속하지 않고 순수한 목적에서 자신만의 문화를 지향하는 부류를 말한다. 음악의 경우 일반적으로 언더밴드라 하면 클럽에서 메탈이나 록, 힙합을 연주하는 그룹을 통칭한다. 한국에서는 1990년 대에 획일적인 대중문화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주변의 소극장 등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출처:매일경제용어사전)


2) 오버그라운드란 힙합에서, 방송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MC들의 씬을말한다. 원래 이 용어는 “메인스트림”이라고 해야 옳으나, 언더그라운드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출처:위키백과)


이승훈 기자

ShawnLee0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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