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커버스토리 :: <연세通>을 통해 바라본 연세

<연세通>을 통해 바라본 연세

 

 

   연세통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연세는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지금까지 연세통이 중요하게 다루어왔던 학내 이야기들을 학생사회에서 꾸준히 이슈가 되고 있는 △ 교육권 △ 국제캠퍼스 △ 학내 비정규직 △ 등록금을 중심으로 파악해 본다. 그 동안의 연세통의 기사들을 비평적으로 되짚어보며, 연세 학생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한다.

 

 

[교육권] 어제도 오늘도, 백양로로 나가는 학생들

 

 

 

 

 

[2006년-4월호(제15호)

‘확대운영위원회·학생 총회를 돌아본다’, ‘최후의 선택, 본관 점거’ 기사 中

15일 있었던 확운위가 학생 총회를 위한 홍보 차원에서 행사로 진행되면서 본래 확운위의 기능인 회의의 목적에 소홀했고 그 여파로 학생총회에서도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 물론 사실상 2000명의 학생들이 모여 토론을 통해 의견일치를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아는 만큼 학생총회 성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이전에 지속적인 협의와 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했어야 했다. (…) 결국 확운위 때 총학생회 측의 “학생총회 때 논의해보자”는 말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

동시에 우리는 본관 점거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등록금 인하, 재수강 제도 허용, 생리 휴강제, 대형 강의 철폐 등과 같은 요구가 곧 나의 요구라고 생각된다면 교육 투쟁의 관조자가 아닌 주체로 나서야 한다.]

 

 

▲ 2006년 3월 23일에 백양로에서 열린 학생총회. 이 날 2192명가량의 학생이 모여 교육권 관련 안건을 논의했다. 그러나 진행 미숙 등으로 본격적인 안건을 의결할 때는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되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연세통 2006년-4월호(제15호)는 연세인들의 ‘교육투쟁’의 시작이 된 확대운영위원회와, 백양로에 이천여 명이 모여 진행한 3.23 학생총회를 비중 있게 다뤘다. 주요 안건은 △ 근거 없는 등록금 12% 인상의 전면무효화 △ 교육 시장화 주도하는 국제캠퍼스 건설 반대 △ 학사 제도 개선에 학생 의견 반영 등이었다. 연세통은 이에 대해 학생들의 접근성과 참여 기회를 높인 반면, 다소 비효율적인 방식과 준비 부족으로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 결의된 내용에 따라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두 달 동안 본관을 장기 점거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의 연세통은 이 기사를 비롯한 몇 차례의 후속 기사를 통해 이 공동행동의 성격이 ‘투쟁’임을 강조해 왔다.

 

 

[2014년-5월호(제75호)

‘[커버스토리] 짓밟힌 당신의 권리 -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기사 中

이 날 모인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준비해온 구호를 외쳤다. ‘재수강 제도 3회 제한 철회’, ‘대형강의와 상대평가 위주의 현 교육제도 개편’ 등이 그 요구안이었다. 백양로에 모인 학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고, 공동행동은 내내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손에 든 꽃의 물결은 학생사회에 다시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교육투쟁’은 2014년 4월에 ‘교육권 공동행동’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거의 똑같은 양상으로 다시 일어났다. 물론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8년 전에는 ‘건설 반대’를 외쳤던 국제캠퍼스에서 이제는 1학년 전체의 RC제도가 시행되는 등 학교의 상황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공동행동을 통해 근본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8년 전과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 △ 재수강을 비롯한 학사 제도 개편에 있어서의 소통 부족 △ 대형 강의 등 교육 환경 개선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연세통 2014년-5월호(제75호)는 4.3 공동행동을 직접 보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학생이 필수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서의 교육권을 강조하고 이를 보장하지 않는 학교를 비판했다. 또한 공동행동의 주요 이슈인 재수강 3회 제한, 허술한 대형 강의·영어강의 문제 등을 지적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요구하는 바를 잘 짚어낸 기사였지만, 공동행동이나 교육권 관련 주제에 대한 연세통만의 시선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 2014.4.2 교육권 공동행동 ‘연세교육에 봄이왔나봄’. 이전에 비해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연세통 75호는 공동행동이 마치 ‘축제와 같았다’고 묘사했다. 이처럼 교육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8년을 거치며 투쟁보다는 대화와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변했지만 그것이 가지는 무게가 변한 것은 아니다. 백양로를 점거하는 교육권 공동행동은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것이 아니라 전에도 있어왔고, 실패 또한 여러 번 맛본 오래된 움직임이었다. 학생의 당연한 권리인 교육권 보장을 위해 학생들이 백양로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등록금] 언제쯤 통보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2006-3월호(제14호)

‘숫자의 무거움보다 참을 수 없는 것’ 기사 中

학교는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 학교 구성원의 일부로, 나아가 학교의 주인으로 전혀 인정고 있지 않다. 학교는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발이 단지 돈이 올랐기에 자연스레 뒤따르는 불쾌감이 아닌, 학생을 무시하는 학교의 등록금 결정 태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발이 단지 돈이 올랐기에 자연스레 귀찮은 문제점이 등록금은 내년에도 오를 것이다. 내후년에도 오를 것이다. 혹시 또 모르지. 딸, 아들, 손녀, 손자가 대학에 입학하는 그 날까지 계속될지도. 우리의 투쟁이 부족하다면, 학교가 비민주적인 태도를 여전히 고수한다면.]

 

 

 

 

 

   등록금에 관한 문제에서 학생사회는 언제나 통보 받는 위치였다. 이는 학내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세통에서도 등록금 인상 또는 등록금 산정 과정의 미심쩍은 부분에 대한 기사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번 보도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12% 인상이라는, 말 그대로 ‘살인적인’ 과거의 등록금 인상률과 최근 기사에서 보이는 동결, 0.8% 인하와 같은 수치를 비교해본다면 등록금 사정이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등록금 액수나 인상률과 같은 단순한 숫자만을 가지고 등록금 문제를 판단할 수는 없다. 연세통 2006-3월호(제14호)는 설사 등록금이 인하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학교의 비민주적 태도가 지속된다면 손자 세대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등록금이 계속 오를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이 예언(?)은 현재까지는 유효한 듯하다. 2014년 현재도 등록금 문제에 관한 학교의 소통 없는 태도는 이어지고 있으며, 명목등록금 인하는 실패했다.

 

 

   물론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내 구성원들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상 학생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구조였던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실질적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대항하는 학생 주도의 촛불 문화제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등록금 관련 문제에서 학생의 목소리가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국제캠퍼스] 잊지 말아야 할 국제캠퍼스의 ‘시작’

 

 

 

 

[2010-4월호(제42호)

‘죄송해요.. 저희도 이런 줄은 몰랐어요’ 기사 中

문이 열리자 새 건물답게 시큼한 접착제 냄새가 끼쳤다. 복도에서는 전기공사가 한창이었다. 교실 문은 대부분 잠겼지만 한 군데 열린 곳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칠판만이 덩그러니 걸렸다. “올해 6월부터 이 건물에서 어학당 수업이 열린다”고 쑤씨에게 말해주자 쑤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여기서 공부 할 수 있을까요?” (…)

“위험하고, 불편하고, 갈 데도 없네요. 저보고 다니라면 못 다니겠어요.”이들 눈에도 국제캠은 아직 학생을 맞을 준비가 덜 되어 보인 듯 했다. “죄송해요. 저희도 이런 줄 몰랐어요”라는 말이 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학교는 국제 하계대학,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학부 예비 과정 등을 ‘올해 안으로’ 개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안으로...]

 

  

▲당시 국제캠퍼스에서 캠퍼스타운역으로 가는 길에는 인도가 없고 덤프트럭이 수시로 다녔다.

 

 

   연세인들의 생활 속에 국제캠퍼스(이하 국제캠)는 이제 제법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국제캠의 시작은 열악했고, 국제캠이 학생사회에 뿌리내려지는 과정은 불통의 연속이었다. 연세통 2010-4월호(제42호)에서는 부분 개교를 단 2달 앞두었던, 공사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던 국제캠을 직접 방문하여 취재한 기사를 실었다. 기자가 아닌 일반 외국인 유학생을 직접 섭외하여 함께 다니며, 국제캠의 주요 구성원이 될 외국인들의 입장을 대변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셔틀버스는커녕 근처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인도조차 없고, 완공되었다던 건물에 건설 자재가 널려 있는 국제캠의 모습을 보며 당황해 하는 유학생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니 그들이 느낀 부끄러움이 같이 느껴지는 듯했다. 기사는 국제캠의 시설 및 제도 준비가 매우 미흡함을 지적하며, 무리한 국제캠 관련 일정을 강행하는 학교의 일방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UIC와 약학대학을 비롯한 일부 학생들의 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1년에 국제캠 관련 기사는 연세통에 하나도 실리지 않았다. 이는 국제캠의 첫 해가 당시 신촌 중심으로 구축된 학생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연세통 역시 국제캠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미처 귀 기울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듯해 아쉬웠다.

 

[2012-10월호(제62호)

[커버스토리] 先입학 後대책, 2013년도 신입생의 운명은? 기사 中

지금 듣고 있는 과목은 국제캠퍼스에서만 열린다. 재수강이라도 하게 된다면 신촌캠퍼스에 간 뒤에도 이 한 과목 때문에 송도에 와야 한다. 그래서인지 1학년 수업인데도 불구하고 학점 경쟁이 더 과열된 거 같고, 나도 재수강은 하기 싫다는 부담 때문에 압박이 더 크다. (…) 다른 과에는 1학년 전공과목을 안 듣고 입대했는데, 제대한 뒤 수강하러 송도까지 온다는 선배도 있다고 한다. RC 제도가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피해를 보는 처지로서 좀 억울한 건 사실이다.

(…) 학교는 앞으로도 RC 준비위원회를 매달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열린 두 차례 회의 일정 및 주요 내용이 모두 학내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음 달『연세소식』을 통해서 단신 기사로 통보받을 뿐이었다. 이를 보더라도 학교가 국제캠퍼스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임을 알 수 있다.]

 

 

 

   국제캠 관련 기사가 다시 등장한 것은 학교가 13학번 신입생의 국제캠 이전을 통보한 2012년부터였다. 2012-10월호(제62호)의 기사는 가상 13학번들의 입장이 되어, 신입생들이 국제캠에서 맞닥뜨릴 △ HE를 비롯한 수업 부족 △ 자치공간 부재 △ 3인1실 기숙사로 인한 불편함 △ 위험한 치안과 불편한 교통 등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또한 소통 창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학교의 RC 준비위원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문제들에 대해 학교는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신입생을 받았고, 결국 이 문제들은 모두 현실로 나타났다.

 

  

▲기사가 실린 연세통 2012년 10월호 커버. 충분한 준비 없이 검증되지 않은 RC를 신입생들에게 무작정 실행하려는 학교의 상황을 비판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아진 것들도 있지만, 수업 부족이나 치안 문제, 학생 자치활동 약화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국제캠의 고질적인 문제다. 그러나 입학과 동시에 RC를 경험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RC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2년 동안 RC제도가 불안정하게나마 학생 사회에 정착한 만큼 RC 제도 자체를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캠 관련 논란의 궁극적인 문제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방적인 학교의 의사결정 태도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RC가 완전히 정착된 이후에도 잊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다.

 

 

[학내 비정규직] 학생사회에 스며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 2011-4월호(좌)와 2014-3월호(우)에서 각각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사태를 다루었다. 11년도 기사가 비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4년도 기사는 비판보다는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 제시에 초점을 맞추었다.

 

[2011-4월호(제50호)

학교가 말하지 않는 3가지 진실 기사 中

2. 용역업체는 휴게실 무단침입, 협박 등의 불법행위를 일삼고 있다.

연세대학교 미화노동자 다수가 고용되어 있는 장풍HR과 제일휴먼은 지난 3월 중순 ‘쟁의행위관련 회사입장’을 공표했다. 사측은 이 문서를 통해 ‘불법행위’에 대해 민·형사 고소·고발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4조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파업권 행사는 민형사상 고소고발이나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서 중 ‘태업은 징계대상’이라는 표현도 문제가 있다. 용역업체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증언도 여러 차례 나왔다. (…)

3. 학교는 용역업체를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음에도 교섭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가 왜 이런‘불량 용역업체’와 계약했는지 의문을 표한다. 불행히도 학생들은 학교 측의 ‘정보 보안 원칙’때문에 용역업체 선정 기준에 대해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최저가 입찰제로 용역업체를 선정한다느니, 학교와 용역업체간의 ‘뒷거래’가 있지 않았겠냐는 의혹이 타사언론에서 흔히 제기된다. (…)]

 

 

   연세통은 학내 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왔다. 지난 2011년 학내 비정규직 경비, 미화노동자의 대대적인 총파업 당시, 연세통 2011-4월호(제50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용역업체가 노동자들에게 불법적이고 부당한 노동행위를 강요했으며, 합법적인 파업을 제재하려고 했던 상황을 밝혔다. 또한 교섭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용역업체 선정기준을 모호하게 하여 뒷거래 의혹까지 나오는 학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파업에 대한 경과는 완전히 생략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사 외의 사건일지를 통해 간단히 다루었다. 대신 본 기사는 노동자들이 처해있던 부당한 상황을 알리고, 용역업체의 부당한 행위와 소극적인 학교의 태도를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춘 기사였다.

 

 

[2014-3월호(제73호)

[커버스토리] 새벽 4시, 0교시 수업을 듣는 사람들 – 비정규직 문제, 고용불안 해결이 우선이다 기사 中

(…) 사회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알리는 존재, 대학에 부여된 사회적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은 사회적 책임을 지닌다. 대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학내 구성원으로 인정 하고 존중할 때,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 역시 해결의 실마리 가 보일 것이다.

만물이 생명력을 되찾는다는 봄이지만 학내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무기력하다. 노조는 사측과의 단체교섭에 실패 했고,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결국 파업에 돌입했다. 생활임금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사안이다. <연세通>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더불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고용불안이 해결되기를 기원한다. 대학은 ‘나 몰라라’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버리기를,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학내 구성원과 연대하며 한 달 넘게 지속되었던 총파업은 시급 490원 인상과 복지 제도 개선 등의 협상안을 극적으로 타결시키며 끝났다. 그러나 이는 완벽한 마무리가 아니라 학생사회에 비정규직이라는 큰 화두를 던진 것이었다. 결국 올해 초 노동인권과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또 다시 시작되었다. 2014-3월호(제73호)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노동자들이 겪는 △ 임금 △ 근무시간 △ 복지 등의 문제들, 학교와 용역업체의 무책임한 태도, 이에 대한 근본 원인이 고용불안이라는 점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과거에 비해 직접적인 비판의 강도가 약해졌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학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단순한 비판에서 나아가 전반적인 상황과 원인, 해결 방안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11년 첫 총파업에서 던져진 비정규직이라는 화두가 3년 간 학생사회에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두 기사의 비교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이지원 기자

smaa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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