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호]이웃의 우경화와 우리의 현주소

과월호 다시보기/67호 2013.05.08 17:37

이웃의 우경화와 우리의 현주소
-우경화하는 일본을 바라보며

 

“침략의 정의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4월 23일,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질문을 받자 위와 같이 말했다. 이는 일제의 만행을 은폐·축소 하는 것을 넘어서 그 자체마저 부정한 것이다. 같은 날 여야 국회의원 168명은 A급 전쟁범죄자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또, 4월 28일 일본 정부는 ‘주권회복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민간 단체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일제의 항복과 7년간의 미군정을 부정하는 취지에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이를 정부 행사로 승격시킨 것은 미군정에 의해 토대가 마련된 평화헌법을 수정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일본 교과서 검정 기준 중 하나인 근린제국 조항 역시 수정될 예정이다. 근린제국 조항은 “아시아 주변 국가에 대한 배려”를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이후 일본 정부는 확실히 우경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국민의 움직임 역시 일본의 우경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연일 계속되는 아베의 극우 행보에도 불구하고, 4월 하순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밝힌 일본 국민의 아베 정부 지지율은 76%에 육박했다. 최근 3, 4 월 일본의 주요 극우주의자들은 “한국인을 죽이자”, “한국 여자를 강간하자”는 구호와 함께 혐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극우주의자들은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거리에서 당당히 외쳐지고 있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외신은 일본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전후 가장 우경화된 정부와 국민”이라고 평했다.

 

▲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 시위의 한 모습. 앳된 중학생이 한국인을 상대로 "남경대학살이 아닌 츠루하시 대학살을 일으키겠다"고 외치고 있다. 츠루하시는 오사카 최대의 코리아 타운이다. (사진: 유튜브 영상 캡쳐)

그들이 우회전하는 이유
사전적인 의미의 우경화는 “사회가 우익적인 사상으로 기울어지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이 동북아시아에서는 배타적인 민족중심주의, 반공주의, 전체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일본의 우경화는 역사 왜곡, 평화헌법 개정, 타민족 배제, 신사참배 등 동아시아 구성원들을 배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매번 외교적·문화적 마찰을 겪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1990년대부터 문제시되었는데, 2000년대 이후 일명 ‘넷우익’ (ネット右翼, 네토우요쿠)이 유행하며 우경화 현상이 급격히 나타났다. ‘넷우익’은 원래 우익 세력에 대한 멸칭 으로 나타났지만 현재에는 이들의 세력이 확장되어 “일본 우경화의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지목된다.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언급되는 것은 경제침체다. 지난 20여년 동안의 경제 침체로 인한 자신감 상실과 위기감이 우경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베 정부도 “일본의 위기”를 강조하며 “강한 일본을 되찾자”라는 구호로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이끌고 있다. 이에 대해 조지 나이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관계학 교수는 “20세기 초 일제의 우경화는 근대화의 성공에 따라 고취된 자신감으로 인해 나타났지만, 지금의 우경화는 오히려 자신감의 추락으로 인해 나타났다”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외에 일본 우경화의 원인으로 침략에 대한 반성 없는 역사 인식이나 소련 붕괴 이후 일본 좌파 세력의 몰락 그리고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문제, 북한 미사일 문제 등이 지목된다.

 

우리는 우경화 논란에서 자유로울까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 이러한 일본의 우경화 과정을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반공주의, 국가주의 등으로 인해 우경화된 사회로 분류되어 왔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한국학 교수인 박노자 씨 는 “한국 정치인들이 일본 우경화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위선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고 평한 바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IMF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어왔고, 최근에는 일본의 넷우익과 비견될만한 세력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가 등장하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우파의 아이콘인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외에 청년 좌 파, 혹은 운동권 세력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약화된 것이나 일본,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민족들을 멸시하는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강해진 것도 일본의 우경화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물론 한국의 우경화는 일본의 그것과 다르다. 한국의 우익은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을 긍정하지 않는다. 반일 감정 역시 우경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로 수십 년간 고통 받았던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 를 배려하지 않는 민족주의의 표출이 엿보인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우경화가 일본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 지난해 있었던 어버이연합, 납북자가족모임 등 우익 시민단체의 반일시위 (사진 출처: 한국일보)

 

우경화된 사회의 우울한 미래
한일 양국은 국제적으로 우호·협력 관계에 있고, 앞으로도 경제 협력이 기대된다. 때문에 양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당장 파국으로 몰고 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경화는 정부의 ‘목적’이라기보다는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각 정부의 지지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은 우경화 자체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우경화는 극단적 반공주의와 결합하여, 일본의 우경화는 군국주의와 결합하여 민주적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두 우경화된 사회가 충돌했을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 다. 양국의 심화된 반목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해치고 경제적·외교적 고립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경화된 사회의 종착역은 결국 우울한 미래일 가능성이 크다.
 
이윤주 기자
martini91@yonsei.ac.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